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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을 사고 묵혀뒀던 시간
어느 날 문득, 도메인을 하나 샀다. youtubeasdf.com. 유튜브 영상 보다가 도메인에 그냥 asdf만 붙여 접속하면 자동으로 영상 요약을 보여주는 서비스.
거창한 기획서도 없었다. 순전히 나의 불편함에서 출발했다.
유튜브를 정말 많이 본다. 인공지능, 스타트업, 개발, 제품 이야기 등등. 그런데 막상 영상은 길고, 정리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이 영상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고 저장해놓은 영상만 수십 개다. 노션에 복사 붙여넣기 하는 것도 귀찮고, 결국엔 다시 찾지 않게 된다.
그래서 시작했다. 유튜브 요약을 자동으로 해주는 작은 툴. 내 필요를 위해 만든 거니까, 나만 쓰면 됐고, 개발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가 문제였다.
‘이걸 배포해도 될까’라는 마음의 허들
툴은 동작했다. 기본 기능은 있었고, 내가 쓸 땐 충분히 유용했다. 하지만 정작 공개하려니 손이 안 나갔다. 마음속 허들이 너무 많았다.
- “이거 너무 허접한 거 아냐?”
- “UI도 별로고, 에러 처리도 안 되어 있는데…”
- “지금 상태로 내놓으면,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었다.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보다, ‘배포를 결심하는 데’ 더 오래 걸렸다.
서비스를 만들고 나서도 오랫동안 묵혀뒀다. 나만 혼자 쓰면서, 매일 약간씩 고치고 고치면서도 정작 외부에 보여줄 생각은 안 했다. 어딘가에서 본 “완벽한 MVP를 만들고 배포하라”는 말이 나를 더 묶어놨다.
그러다 우연히 본 쓰레드 하나가 나를 흔들었다. ‘완성되지 않아도 일단 배포하라. 그게 인디해킹의 정수다.’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싶었다.
‘배포부터 하고 보자’의 실험
그래서 그냥 올렸다. 거의 내가 쓰던 그 상태 그대로. 버그도 있었고, 디자인도 투박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사실 ‘서비스 런칭’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냥 쓰레드에 글 하나 쓰고, 링크 달고, 후속 글로 내가 왜 이걸 만들었는지, 어떤 불편을 겪었는지, 솔직하게 썼다.
그리고 터졌다.
7만 뷰가 넘는 조회수, 수백 개의 리트윗과 좋아요, DMs에 몰려든 피드백. 사람들은 내가 겪은 것과 똑같은 불편을 겪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거 왜 이제 나왔냐”고 했고, 누군가는 “매일 유튜브 보는 사람한테 진짜 필수다”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게 꼭 완벽할 필요는 없었구나.”
진짜 검증은 ‘배포’ 이후에야 시작된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알게 됐다. 내가 이 제품을 정말 좋게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기준으로 평가를 멈추는 것’이었다.
프로그래머의 눈으로 보면,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코드고 디자이너의 눈으로 보면, 민망한 수준의 인터페이스였지만 사용자의 눈으로 보면, 당장 쓸 수 있는 솔루션이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반응을 받아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실제로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면, 그 어떤 허접함도 용서받을 수 있다.
이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 만들었으면 일단 배포한다.
- 작게 만들고, 바로 써보고, 반응을 본다.
- 피드백을 받은 다음에 개선한다.
이 순서가 정석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이건 진짜 쓸모 있을까?‘라는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걸 뚫는 유일한 방법은 배포뿐이다.
youtubeasdf는 아직도 계속 바뀌고 있다. 그 첫 시작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냥 내놓은 날’이었다.
PS. 지금도 ‘내가 쓸 요약 서비스’ 정도로 유지 중이지만, 놀랍게도 수천 명이 이걸 쓰고 있다. 이 작은 실험이, 누군가의 습관을 조금은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도 만들면 일단 배포부터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