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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날, 뇌 대신 AI를 꺼낸다는 선택
코딩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손이 가지 않는 날이 있다. 단순한 귀찮음이 아니라, 시작부터 막막하고 복잡하고 불편하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은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 릴스를 켠다. 말하자면 ‘뇌를 쉬게 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AI 코딩 도구를 켜보는 것은 어떨까. 코드를 대신 짜주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 대신 시작을 대신해주는 도구’로서 말이다.
예를 들어 Cursor 같은 AI 코드 에디터나, Jules나 Codex 같은 코딩 에이전트에게 “지금 내가 겪는 문제”를 프롬프트로만 작성해 본다. 코드를 짜는 게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말, 현재의 문제 상황을 서술하는 정도로. 그러면 의외의 일이 벌어진다. 아주 가벼운 입력만 했을 뿐인데도, 이미 구조화된 아이디어나 초안이 돌아온다. 그걸 읽는 순간, 머리 어딘가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시작이 된 것이다.

사람은 ‘시작’에 모든 에너지를 쓴다
이런 방식의 ‘강제 시동’은 단순한 요령이 아니라, 인지심리학적으로도 꽤 합리적인 전략이다.
미국의 행동 심리학자 B.J. Fogg는 ‘작은 습관(Small Habits)’ 이론에서 인간의 행동 변화를 만드는 데 있어 핵심은 “작고 가벼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큰 계획이나 의지는 지속력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시작, 예를 들어 ‘운동화를 꺼내 놓기’, ‘브러시를 손에 들기’ 같은 단계를 밟으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코딩도 마찬가지다. ‘진짜 코드 작성’에 앞서, 단순히 문제를 설명하는 텍스트 하나 쓰는 것만으로도 작은 시동이 걸린다. 그리고 이 시동은, AI의 피드백을 통해 즉시 보상된다. 결과적으로는 자발적인 몰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감정의 긍정 루프는 일종의 자기 강화 구조로 작동한다.
이 현상은 뇌 과학에서도 설명된다. 전전두 피질(prefrontal cortex) 은 복잡한 계획과 판단을 담당하지만, 동시에 쉽게 피로해진다. 특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를 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바로 그 시점에, 생각의 초기 정리와 방향 제시를 AI가 도와준다면, 인지 부하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프롬프트로 생각하기
어떤 문제든 Jules나 Codex에게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말해보자.
나는 지금 리액트 기반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는데, 로그인 시스템을 Firebase로 구현하고 싶어. 그런데 상태관리나 인증 흐름에서 뭔가 정리가 안 된다. 구조적인 가이드를 받고 싶어.
혹은,
어떤 함수를 짜야 할지 모르겠는데, 지금 내가 가진 건 이런 데이터들이고 최종적으로 이런 결과를 얻고 싶어.
이런 문장만 입력해도 Jules나 Codex는 ‘작은 수준의 PR(Pull Request)’ 혹은 함수 수준의 구현을 제안해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AI의 응답을 통해 내가 생각을 다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핵심 이슈가 AI의 리포트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
Cursor의 경우에도 요구사항을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관련 코드 블록을 만들어준다. 이후 AI가 작성한 코드를 기반으로 내가 수정하거나 추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식으로, 작업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뇌를 빼놓고 코딩하지 말자”는 경고도 중요하다
물론 이 방식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계속해서 AI에게만 떠맡긴다면, 나 자신은 사고의 근육을 잃어버리게 된다.
AI는 내가 ‘생각하는 중’일 때 더 뛰어난 성과를 낸다. 내가 문맥을 이해하고, 전체 구조를 꿰뚫고 있을 때 AI의 제안은 훨씬 정확하고 유용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 머리로 설계하는 시간’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그 전에 “진입 장벽을 넘는 도구”로 AI를 활용하는 건, 매우 실용적인 선택일 수 있다.
이런 전략은 특히 아래와 같은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 마감이 코앞인데, 손이 안 움직일 때
- 아이디어는 있는데, 구조화가 잘 안 될 때
- 정신적 리소스가 고갈된 퇴근 후 사이드 프로젝트 시간
- ‘오늘은 좀 눕고 싶은데…’ 싶은 날
그럴 땐 Jules에게 말을 걸어보자. Codex에게 중얼거려 보자. Cursor 창을 열어 “이런 걸 만들고 싶은데…”라고 적어보자. 그러면 놀랍게도, 어느새 일은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결론: 시작을 AI에게 외주 줘도 괜찮다
코딩이든 글쓰기든 디자인이든, 모든 창작은 ‘시작’이 가장 힘들다. 그 고비만 넘기면, 그다음은 생각보다 수월하다.
AI 코딩 도구들은 이 ‘첫 단추’를 대신 채워주는 존재다. 이 도구들은 내가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 순간, 아주 적은 비용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그 시작은, 때때로 도파민과 함께 돌아온다.
물론 우리는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사고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니까, 지치기도 하고, 버겁기도 하다. 그럴 땐, 잠깐이라도 뇌를 맡기고, AI에게 시작을 외주 줘보자. 그 시작이 당신의 다음 생산성을 열어줄지도 모른다.